1948년 정부수립을 앞두고 김동리 등은 정부에 문화부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 취지는 북한공산주의정권이 강력한 문화정책 아래에서 운영되고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고, 선전모략의 마수로부터 청소년을 교도하고, 바른 민족문화정신으로 민중을 결속하기 위해서는 국민문화운동이 필요하기 때문(<동아일보> 1948.10.12. 엉망인 기사 문장을 정리). 문화를 선전의 내용, 매체, 대상이라고 보는 그의 탁월한 선전선동가이다. 그는 ‘유기적 지식인’으로 친일, 지주, 자본이 장악한 문화적 헤게모니를 방위하였다. 그가 외치던 ‘민족이니 순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포함. 순수문학을 주장하였던 김동리의 이념에서 반공이 가장 중요.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참고.

국편

주한미군과 대사관은 백선엽의 능력과 역할을 항상 호의적으로 보았다. 백선엽 역시 “공개적으로 미국을 찬양하였다”. 1956년 이승만과 이기붕에게 투표하도록 부하를 압박하는 선거개입, 그와 다른 장면 부통령 지지는 그의 정치적 야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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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당시 계엄사령관으로 ‘중립’을 지켜 인명을 살상하지 않았다고 칭송해 온 송요찬 중장이 실은 자유당 후보 이승만과 이기붕을 당선시키려고 군대를 통제하였다는 주한미군의 첩보. 여기에는 군대 내부의 파벌 싸움, 송요찬의 백선엽 견제가 개입되었다(백선엽도 1956년 선거 개입). 특히 방첩대(CIC)는 민주당원과 외국인까지 사찰하였다. ‘화랑’을 내세워 출세한 이선근 전 문교부장관은 예비역 군인으로 상무회를 조직하여 자유당 선거운동을 하였다. 이선근은 4.19혁명 후 부정선거관련자로 구속되었다가, 5.16쿠데타 덕분에 선고유예를 받아 풀려났다. 이선근은 일제와 관동군,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군대가 선거에 개입하여 독재정권을 지지하였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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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이 운용한 통신검열단이 제공한 정보로 아편과 헤로인 공장을 압수. 이 공장은 몇 명의 첩을 둔 한국인 의사가 가진 집 6곳 중 하나였다. 일제 관동군은 한반도 산악지대 등지에서 양귀비를 재배하여 아편을 제조하였고, 조선인 상인 등을 이용해서 중국에서 판매하였다. 그 수입은 전쟁비용으로 사용하였다. 해방 직후에만 하여도 아편 중독자가 많았고, 중독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한다고 광고하는 병원도 있었다.